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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所山 烽燧臺 記念物(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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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08일(수) 10:43 [i주간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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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문태
국사편찬위원
경북대 대학원 중문학전공 | | ⓒ i주간영덕 | | “길 따라 물 따라 바람 따라” 大所山 烽燧臺가 자리하게 된 영해 지역의 특수성과 중요성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한다.
755년(신라 경덕왕 14년) 英陽南氏 始祖 金忠1)
이 海流2)
를 따라 자연스럽게 영덕군 축산포로 물길을 따라 왔다고 한다. 바람길을 따라 새가 무리를 지어서 날아 가는 것도 이러한 자연의 理致라고 볼 수 있다.
“한개의 봉화가 오르면 아직은 평화롭다.”
“두 개의 봉화가 오르면 적이 보이는 기미가 있다.”
“세개의 봉화가 오르면 적이 가까이 오고 이싸.”
“네게의 봉하가 오르면 적이 국경을 넘어 오고 있다.”
“다섯개의 봉화가 오르면 이미 적과의 치열한 전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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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i주간영덕 | | 烽燧, 烽火 가장 빠른 통신수단으로 대소산 봉수대에서 멱목산(서울 남산)까지 제2봉수 영남권과 합류하여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축산면 도곡리 산 20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대소산 봉수대(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지정 지방기념물 37호로 지정)는 해발 282의 최상봉인 대소산의 東峯에 축조되어 있다. 봉수대는 현재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직선거리로는 3km지점, 축산항으로부터는 약 1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 넓이는 2,826㎡로 축조된 시기를 고려시대 혹은 조선 전기로 추정한다. 봉수대의 구조를 살펴보면, 동봉의 지형을 이용하여 직경 약 20m 되는 넓이의 둘레에 돌로 축대를 쌓아 올려 그 위에 봉수대를 마련했다. 축대는 크고 작은 활석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현재 남쪽이 약 2m, 서쪽이 약 1,6m가량 높이의 구조물만 잔존하고 있으며 서쪽 鞍部3)
에 연결되는 부분은 방형으로 돌출되어 나즉한 축대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봉수대 중앙부에는 역시 석축으로 된 연통이 구축되어 있다. 연통의 외형은 단경 10m, 장경 12m에 높이가 3m 되는 원통형이며, 구조는 대소형의 활석을 이용하여 두께 1,5m의 석축벽으로 둘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는 연통 부분이 매립되어 그 구조를 확인할 수 없다. 東峯 西峯과 鞍部를 포함한 그 외각은 가느다란 타원형으로 석축된 돌담을 돌려 두고 있다.
돌담은 활석을 쌓아 올렸으나 거의 붕괴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가 없으며 길이는 장축이 약 120m, 가장 좁은 안부에서는 단축이 약 23m이다. 이 돌담 외축은 올라가기 힘든 심한 자연경사를 이루고 있다. 봉수대 외곽을 돌리고 있는 보호벽 내의 서봉에는 조선시대 기와조각이 산재·분포되어 있다. 이는 봉수군들이 막사로 사용한 건물터임을 추정케 하고 있으며, 안부의 남쪽 경사면의 긴 곳은 11m, 짧은 곳은 4m의 석축 담장이 방형으로 둘려져 있다. 대소산 봉수대는 남쪽으로는 창포리 뒷산인 별반산 봉수대, 북으로는 후포의 후리산 봉수대, 서로는 영해 원구리 뒷산인 광산 봉수대를 거쳐 진보의 남각산 봉수대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대소산 봉수대는 현재 영덕 인근 지역의 여러 봉수대 가운데서 가장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어 조선시대 통신수단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으로, 높은 산에 올라가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된 영덕 大所山烽燧臺는 영덕 축산포 방면의 상황을 서울 남산까지 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남쪽으로 別畔 봉수대, 북으로 평해의 厚里山 봉수대, 서로는 廣山 봉수대를 거쳐 진보의 南角山 봉수대로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체계화 한 것이다. 산의 꼭대기에는 방어벽을 쌓고 성 안에는 직경11m, 높이 3.5m로 봉돈(烽燉)을 쌓았다. 봉수대의 형태가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있어 조선시대 통신수단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여러 봉수대는 지방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데, 그 중 대소산 봉수대는 그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을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게 설비해놓아 밤에는 햇불[烽], 낮에는 연기[燧]로 변방의 동태를 중앙으로 알리기에 적합하다.
1) 생졸년 미상. 본관은 영양(英陽).
본래는 당나라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 사람 김충(金忠)이다. 755년(신라 경덕왕 14)에 당나라의 안렴사(按廉使)로서 일본에 사신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경상북도 영덕(盈德)의 죽도(竹島) 혹은 축산도(丑山島)에 표류하게 되었는데, 신라에서 살기를 원하였다. 이에 경덕왕이 이러한 사실을 당나라 현종(玄宗)에 알리고 허락하였다. 경덕왕은 그가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南氏)를 내리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으며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렸다. 이로써 남씨(南氏)의 시조가 되었다. 남씨라는 성(姓)은 그가 남쪽으로부터 왔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2) 연중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해수의 흐름을 말하는 것으로, 지구 자전에 의한 전향력의 영향으로 북반구에서는 시계 방향, 남반구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환류한다.
3) 산의 능선이 낮아져서 형태가 말 안장과 비슷하게 된 곳을 말한다. 산을 넘는 교통로로 흔히 사용하며 '고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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