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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면 조금리 고 엄종수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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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의진 활동한 공적으로 건국훈장 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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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12일(화) 13:02 417호 [i주간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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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15일 광복65주년을 맞이하여 대구경북연합지부(지부장 이인술)에서는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도내 기관단체장과 각급 단체 그리고 광복회원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념식에서 고 엄종수옹이 건국훈장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애국지사 엄옹은 영월 엄씨 시조 엄임의 의 25세손 엄성필의 장남으로 고종 2년 병인년 1865년 9월9일에 태어나시어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명치 21년 1888년 7월 7일 안동김씨 김갑주와 혼인하여 경북 울진군 온정면 조금동에서 평온한 생활을 하였다.
애국정신이 투철한 엄지사는 일본이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 즉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어 조국이 강탈당하자 전국적으로 1905년 을미 의병이 일어났으며 영덕, 울진 청하 등을 중심으로 신돌석 장군이 1906년 3월에 이지역의 청년들을 모아 영릉의 병진을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일본군 토벌에 나선 것을 계기로 영릉의진에 들어가 조국을 찾고자 목숨을 바쳐 일본 경찰과 전투를 하면서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엄지사는 영릉의진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면서 남쪽으로 청하, 영덕, 영해, 북으로는 평해, 울진, 삼척, 강릉, 청송, 의성, 영양, 봉화 등지를 오르내리며 1906년부터 1910년 2월까지 5년 동안 의병들의 활동에 필요한 식량과 자금을 조달하는데 전력을 다 하였다.
1910년 2월 10일 엄지가 온정면 조금동 엄업이 집에서 일경의 눈을 피해 있는 것을 영해 주재소 순사가 알고 습격하여 체포되었다.
당시 44세로 대구 지방검찰청 형사 사건부 공소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으며 조국의 독립을 보지도 못하고 해방 10년전인 1936년 3월 13일 향년 71세 로 영민하셨다.
이와 같이 엄지사의 공적이 많은데도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100년 전 일을 모르고 살아오다 국가 보훈청의 연락을 받고 임만진 광복회 영덕군 지회장의 도움으로 서울 국가 보훈청 대전 국가기록원을 다니며 자료를 찾아 제반 서류를 국가 보훈청에 제출하여 2010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손자 엄영웅이 애국지사의 건국훈장 애국장을 전수받았다.
후손들은 엄지사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지난 5일 묘소에 비석을 세우고 인근 주민들을 불러 자축연을 베풀었다.
이날 손자인 영웅씨는 늦었지만 그 공적을 발굴하여 빛을 보게 되어 후손으로써 보란을 느낀다고 말하고 선조의 위대한 공적을 생각하면 더욱 성실한 자세로 국가와 사회에 애국하고 봉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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